이 작품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화면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장면이다. 왜 그런지를 적어 둔 노트이고, 관찰 세 가지와 의문 하나로 되어 있다.

관찰 1. 걷게 하면 설명이 견딜 만해진다
사춘기 증후군이라는 괴현상을 이 작품은 과학 용어로 풀어낸다. 물리부 부원 후타바 리오가 등장할 때마다 관측과 확률과 세계선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설명이 길어지는 순간 애니메이션은 정지한다는 데 있다.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말하면 화면에서 움직이는 것은 입뿐이다.
클로버웍스는 가장 단순한 해법을 골랐다. 인물을 걷게 한다. 하굣길, 해안선, 육교, 전철역. 무대가 가나가와 후지사와 일대라 바다와 철길이 배경으로 계속 흘러간다. 대사가 정지해 있어도 배경이 이동하면 화면의 정보량은 유지된다. 게다가 나란히 걸으면 두 인물에게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대화는 마주한 대화보다 솔직해진다. 연출과 각본이 같은 문제를 동시에 푸는 드문 경우다.

거의 항상 이동 중에 결정적인 말을 한다. 멈춰 서는 순간은 따로 계산돼 있다
관찰 2. 악기를 셋으로 줄여 대사를 살린다
음악을 fox capture plan이 맡았다. 오케스트라도 신시사이저도 아닌 피아노·베이스·드럼의 재즈 트리오 편성이다. 이 선택이 대사 중심 작품에서 결정적으로 작동한다. 악기 수가 적으니 주파수가 비지 않고, 대사 밑에 깔려도 말을 덮지 않는다. 동시에 재즈 특유의 불규칙한 리듬이 평범한 하굣길 장면을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 시간처럼 들리게 만든다. 사건 없는 화면을 사건처럼 만드는 일을 이 작품에서는 음악이 절반쯤 감당한다.
관찰 3. 사라지는 인물을 투명하게 그리지 않는다
1화 부제가 「선배는 바니걸」이고 3화가 「너만이 없는 세계」다. 두 부제 사이에서 첫 번째 문제가 완결된다. 가장 눈에 띄는 차림을 한 인물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된다는 설정인데, 이 모순을 화면으로 처리하는 방식이 영리하다. 사쿠라지마 마이가 사라질 때 작품은 그를 투명하게 그리지 않는다. 인물은 또렷하게 서 있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만 그를 통과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주제를 작화 지시 하나로 요약한 셈이다. 세토 아사미의 톤이 그 장면들에서 거의 흔들리지 않는 것도 같은 계산이다.
의문. 이 구조를 미스터리라고 부를 수 있나
전 13화는 옴니버스로 짜여 있다. 부제를 따라가면 세 편, 세 편, 두 편, 세 편, 두 편으로 끊긴다. 각 묶음마다 한 인물의 사춘기 증후군을 다루고, 해결되면 다음 인물로 넘어간다. 형식은 미스터리인데 배치는 히로인 로테이션이다.
추리물이라면 시청자가 단서를 모아 답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작품에서는 후타바 리오가 과학 용어로 현상을 명명하는 순간 해결의 방향이 이미 정해진다. 명명이 곧 해답인 구조이고, 따라서 시청자가 추리에 참여할 여지가 없다. 과학 용어는 논리로 쓰이지 않고 비유로 쓰였다. 장르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미스터리 태그를 달고 있는 이상 짚어 둔다. 앞 묶음에 세 편을 쓰고 뒤 묶음에 두 편을 쓰는 배분도 같은 문제다. 같은 무게의 문제가 다른 분량으로 처리된다.
항목별로 적으면 이렇게 된다
- 연출이 가장 강하다. 걷는 화면과 시선 처리는 대사 중심 각색의 모범에 가깝다
- 음악과 음향도 마찬가지다. 재즈 트리오 편성이 대사와 충돌하지 않는다
- 연기는 이시카와 카이토와 세토 아사미가 주고받는 속도 자체가 액션 노릇을 한다
- 미술은 2018년 4분기작인데 시간대 표현이 지금 봐도 낡지 않았다
- 구성은 헐겁다. 13화에 다섯 이야기를 넣었고 뒤로 갈수록 한 묶음에 주는 시간이 준다
- 각본은 라이트노벨 연재의 논리를 13화 애니메이션의 논리로 바꾸지 않았다
이 작품이 약한 것은 뒤의 둘이다. 연출이 감당한 것에 비해 각본이 덜 감당했다.
대사가 많은 작품을 화면으로 어떻게 버티게 만드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권한다.
미스터리 태그를 보고 추리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