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작중 음악은 케빈 펜킨이 만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작중 음악 전체를 일본 밖 작곡가가 맡는 일은 흔하지 않다. 이 사실 하나에서 시작해 세 가지를 논증한다.

메이드 인 어비스

1. 이 작품에는 참고할 소리가 없다

어비스라는 거대한 구멍을 내려가는 이야기다. 계층마다 지형과 생태가 달라지고, 그 세계에 대응하는 현실의 소리가 따로 없다. 학원물이라면 교실 소리가 있고 시대극이라면 그 시대의 악기가 있는데 이 작품에는 그런 기준점이 없다. 기준점이 없으면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의 관습을 아는 것이 오히려 제약이 될 수 있다. 일본 밖 작곡가를 앉힌 이유를 나는 여기서 찾는다.

2. 결과가 이후 이력으로 확인된다

케빈 펜킨의 사운드트랙은 이 작품으로 크게 주목받았고, 이후 「천국대마경」과 「약사의 혼잣말」(공동) 등의 음악에도 참여했다. 한 번 쓰고 끝난 실험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 뒤로도 계속 불려 갔다. 작곡가 한 사람의 이력이 그 결정이 통했는지를 사후에 말해 준다.

리코

참고할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는 무엇을 모르는 사람이 유리해질 수 있다

3. 주제가를 쓰는 방식도 같은 방향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엔딩곡을 회차에 따라 이렇게 바꾼다.

  • 1화는 「Deep in Abyss」. 리코(토미타 미유)와 레그(이세 마리야)가 부른다
  • 2~9화는 「旅の左手、最果ての右手」. 같은 두 사람이 부른다
  • 10~12화는 같은 곡인데 나나치(이자와 시오리)가 더해져 셋이 부른다

곡을 바꾸지 않고 부르는 사람만 늘렸다. 일행이 늘어나는 이야기에서 엔딩의 목소리 수가 함께 늘어난다. 주제가로 일행의 상태를 알린 셈이고, 이건 곡을 통째로 갈아 끼우는 흔한 방식과 다르다.

오프닝도 같다. 「Deep in Abyss」를 부르는 것이 리코와 레그를 맡은 두 성우다. 오프닝과 엔딩을 모두 극중 인물의 목소리로 채운 셈이다. 바깥에서 온 작곡가가 작중 음악을 맡고 주제가는 극중 인물이 부른다. 이 배분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덧붙여 둘 것

음악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그림체와 실제 내용의 거리가 이 작품에서 가장 자주 지적되는 지점이다. 소리가 앞장서서 세계를 설명하는 만큼, 그 소리를 따라간 사람이 도착하는 곳도 그만큼 깊어진다.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남은 사실도 적어 둔다. 2017년 7월 7일부터 9월 29일까지 전 13화, 제작은 키네마 시트러스, 감독은 코지마 마사유키, 시리즈 구성은 쿠라타 히데유키,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은 키세 카즈치카다. 미술감독은 마스야마 오사무이고, 원작은 츠쿠시 아키히토가 웹 코믹 감마에 연재한 만화다. 음향 감독은 야마다 하루다. 원작자 츠쿠시 아키히토는 애니메이션 원화에도 참여했다. 원작을 그린 사람이 애니메이션 그림에도 직접 손을 댔다는 뜻이다.

한 화가 25분씩 열세 화다. 이야기는 극장판 「심혼의 여명」(2020)과 2기 「열일의 황금향」(2022)으로 이어졌다. 1기가 13화로 끝나고도 뒤가 계속됐다는 것은 이 1기가 완결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적은 엔딩의 목소리가 늘어나는 방식도 그 전제 위에서 성립한다. 일행이 더 늘어날 여지가 남아 있어야 쓸 수 있다.


답하지 못한 질문을 하나 남긴다. 바깥에서 온 작곡가를 앉히는 결정은 이 작품처럼 참고할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만 유리한가, 아니면 기준점이 뚜렷한 작품에서도 통하는가. 전자라면 이건 이 작품의 특수한 사정이고, 후자라면 다른 작품들이 아직 안 해 본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