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 사토시의 장편 세 편이 여기 다 있다. 「퍼펙트 블루」(1998), 「천년여우」(2002), 「파프리카」(2006). 셋 다 매드하우스 제작이다. 배역 명단만 나란히 놓고 본다.

세 편의 주연 배분
- 퍼펙트 블루는 키리고에 미마 한 사람을 이와오 준코 한 명이 맡는다
- 천년여우는 후지와라 치요코 한 사람을 세 명이 나눠 맡는다. 오리카사 후미코·코야마 마미·쇼지 미요코
- 파프리카는 파프리카와 치바 아츠코 두 인물을 하야시바라 메구미 한 명이 맡는다
천년여우와 파프리카가 정확히 반대다. 천년여우는 한 사람을 셋으로 쪼갰고, 파프리카는 둘을 하나로 합쳤다. 그 사이에 낀 퍼펙트 블루는 하나에 하나다.
왜 셋인가
천년여우의 치요코는 다큐멘터리 인터뷰에 응하는 노년의 여배우이고, 카메라 앞에서 자기 인생을 이야기하는 동안 화면은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한 인물의 청년·중년·노년이 한 편 안에 다 나온다. 나이를 그림으로만 바꾸고 목소리는 한 사람이 조절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배분은 이렇다. 청년 시기를 오리카사 후미코, 중년을 코야마 마미, 노년을 쇼지 미요코가 맡는다. 주연 한 자리에 세 사람의 이름이 올라간다는 것은 나이를 연기로 흉내 내지 않고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는 뜻이다. 회상이 이야기의 뼈대인 작품에서 이건 작은 결정이 아니다.

한 인물의 이름 옆에 세 사람이 적혀 있으면 그 작품은 시간을 다룬다
파프리카는 왜 하나인가
파프리카도 같은 논리로 읽힌다. 파프리카와 치바 아츠코는 같은 사람의 두 인격이다. 꿈에서 활동하는 파프리카와 현실의 연구자 치바 아츠코가 이름도 얼굴도 다르게 나오는데, 목소리는 하야시바라 메구미 한 사람이다. 둘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화면이 설명하기 전에 목소리가 먼저 말해 버린다.
여기서 규칙 하나가 보인다. 이 감독은 한 사람 안에 여럿이 있을 때 배역을 늘리고, 여럿으로 보이는 것이 한 사람일 때 배역을 줄인다. 배역 수를 인물 수에 맞추지 않고 이야기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드러낼지에 맞춘 셈이다. 세 편에서 세 번 다 다른 배분이 나온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처음 보는 사람이 놓치는 것
아쉬운 것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있다. 회상과 현재가 예고 없이 이어 붙는 방식이라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이 회상인지 현재인지 놓치기 쉽다. 세 목소리가 그 혼란을 줄여 주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다 메워지지는 않는다.
명단에서 더 나온 것
음악 크레딧도 세 편을 갈라 놓는다. 퍼펙트 블루는 이쿠미 마사히로이고, 천년여우와 파프리카는 둘 다 히라사와 스스무다. 각본은 반대로 묶인다. 퍼펙트 블루와 천년여우가 둘 다 무라이 사다유키이고, 파프리카는 곤 사토시가 미나쿠치 세이시와 함께 썼다. 천년여우가 앞 작품과는 각본으로, 뒤 작품과는 음악으로 묶인다. 세 편 가운데에 놓인 작품이라는 사실이 명단에 그대로 나타난다.
나머지 사실도 적어 둔다. 2002년 9월 14일 일본 개봉, 한국은 2004년 7월 9일이다. 제작은 매드하우스, 각본은 곤 사토시와 무라이 사다유키,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은 혼다 타케오다. 오리지널 각본이고 러닝타임은 87분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타치바나 겐야는 이이즈카 쇼조, 카메라맨 이다 쿄지는 오노사카 마사야, 치요코가 평생 쫓는 이름 없는 남자는 야마데라 코이치가 맡는다. 오프닝과 엔딩은 각각 「치요코의 테마 MODE-1」과 「Rotation [lotus-2]」이고 둘 다 히라사와 스스무다.
상은 세 곳에서 받았다. 2001년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최우수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예술적 혁신상, 2002년 마이니치 영화콩쿠르 오후지 노부로상, 2003년 도쿄 애니메 어워드 극장영화부문 최우수작품상. 국내 제목의 「여우」는 짐승이 아니라 여배우(女優)다. 영어권 제목이 「Millennium Actress」인 것과 같은 말이다.
배역 명단은 작품을 보기 전에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료이고, 이 세 편에서는 그것만으로도 꽤 멀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