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배역표에서 눈에 걸린 것은 한 줄이다. 주인공 키타가와 마린 역의 스구타 히나는 이 작품으로 처음 주연을 맡았다. 2022년 1분기, CloverWorks 가 만든 전 12화짜리 작품에서다.

그 비스크 돌은 사랑을 한다

이 배역이 요구하는 것

마린은 코스프레를 하는 인물이다. 코스프레는 남의 배역을 흉내 내는 일이고, 그러므로 이 배역을 맡은 사람은 한 인물을 연기하면서 그 인물이 흉내 내는 것들도 함께 감당한다. 배역 하나 안에 층이 여러 개 있는 자리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경력이 쌓인 사람을 앉힌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반대로 갔다. 아직 주연 경력이 없는 사람에게 12화 내내 화면 한복판에 서는 배역을 줬다.

소재와 겹친다

그 결정이 이야기의 소재와 겹친다는 점이 이 작품의 특이한 자리다. 작중에서 의상을 만드는 쪽도 처음 해 보는 사람이다. 재봉과 소품과 촬영을 차례로 익혀 가는 과정이 화면에 구체적으로 올라온다. 처음 해 보는 일을 다루는 이야기의 주연을, 처음 주연을 맡는 사람에게 준 것이다.

이것이 의도된 배치였는지는 알 수 없고 그렇게 적지도 않겠다. 다만 캐스팅 결정과 소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은 남는다.

키타가와 마린

캐스팅이 통했다는 것과 12화가 충분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결과가 남긴 기록

결과 쪽은 확인이 된다. 방영 당시 마린은 여러 캐릭터 인기 투표에서 상위권에 올랐고, 후속 시즌이 2025년 7월부터 방영됐다. 첫 주연에게 맡긴 배역이 시리즈를 이어 가게 만드는 축이 됐다는 뜻이다.

원작은 후쿠다 신이치가 스퀘어 에닉스의 「영 간간」에 연재한 만화이고, 애니메이션 감독은 시노하라 케이스케다. 제작사 CloverWorks 는 같은 시기에 「호리미야」와 「청춘 돼지는 바니걸 선배의 꿈을 꾸지 않는다」도 만들었다.

이 소재는 시간 단위가 다르다

학원 로맨스의 기본 시간 단위는 하루다. 아침에 만나고 점심을 먹고 방과 후에 헤어진다. 한 회차에 하루나 이틀을 담으면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런데 이 작품이 함께 다루는 의상 제작은 단위가 며칠에서 몇 주다. 천을 고르고 본을 뜨고 재봉하고 소품을 만들고 마지막에 촬영한다. 이 공정을 건너뛰지 않고 보여 주기로 한 것이 이 작품의 성격인데, 그러면 한 회차 안에 서로 다른 두 시계가 같이 돌아간다. 하루짜리 관계의 시계와 몇 주짜리 작업의 시계다.

둘을 한 화에 나란히 놓으면 어느 한쪽은 요약된다. 공정을 차근차근 보여 주는 회차에서는 관계가 멈춰 있고, 관계가 움직이는 회차에서는 공정이 몇 컷으로 줄어든다. 이 작품을 두고 진도가 느리다는 말과 과정이 자세하다는 말이 같이 나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시계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첫 주연이라는 조건이 이 자리에서 하는 일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배역은 두 시계를 다 태우고 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작업하는 사람이자 관계의 한쪽이고, 그 위에 흉내 내는 배역들이 얹힌다. 12화 동안 화면에서 가장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자리를 경력 없는 사람에게 준 것이다.

제작진이 무엇을 보고 그 결정을 했는지는 밖에서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캐스팅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값이 큰 판단이다. 12화는 다시 녹음하지 않는다.

12화가 나눠 쓴 시간

아쉬움은 분량 쪽에 있다. 의상 제작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는 것이 이 작품의 성격인데, 그 공정은 시간을 먹는다. 12화 안에서 공정을 보여 주는 시간과 두 사람의 관계가 움직이는 시간이 같은 그릇을 나눠 쓴다. 둘 다 하려면 어느 한쪽은 요약된다. 시즌이 끝날 때 관계 쪽이 어디까지 왔는지가 그 나눔의 결과다.


2기에 거는 것은 하나다. 1기가 첫 주연에게 배역을 맡기며 치른 위험은 이미 끝났다. 같은 사람이 세 해 뒤에 같은 배역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작품이 아니라 배역표가 먼저 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