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작품을 두 번 본 기록이다. 첫 시청과 두 번째 시청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나란히 적는데, 미리 말해 두면 작품은 그대로였고 달라진 것은 내가 쥐고 있던 정보의 양이었다.

첫 번째로 볼 때 열한 편은 정말 느리다
전 24화 가운데 앞의 열한 편에서 사건이라 부를 만한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아키하바라의 좁은 방에서 인물들이 농담을 주고받고, 개조한 전자레인지로 실없는 실험을 한다. 느리다는 평가는 과장이 아니지만, 이 느림은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다.
원작은 2009년 5pb.와 니트로플러스가 낸 비주얼 노벨이고, 그 게임에서 이야기를 굴리는 장치는 휴대전화다. 플레이어는 걸려 온 전화를 받을지 말지, 문자에 어떤 낱말로 답할지를 고르며 분기를 만든다. 선택은 곧바로 결과를 보여 주지 않고 한참 뒤에야 회수된다. 애니메이션은 그 분기를 전부 걷어내고 한 줄로 편다. 그러면 선택의 순간은 남는데 선택지가 사라진다. 앞의 열한 편이 느린 이유는 결정적인 정보가 이미 화면에 나와 있는데 그것이 정보라는 표시만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볼 때 같은 장면이 다른 물건이 된다
회차 부제를 늘어놓으면 정보를 어떻게 묶어 두었는지가 드러난다. 2·3화가 파라노이아, 4·5화가 랑데부, 6·7화가 다이버전스, 8~10화가 호메오스타시스, 11·12화가 도그마다. 한 개념을 두세 편에 걸쳐 놓고 그 안에서 실험 하나를 끝낸다. 두 번째로 볼 때 이 묶음은 장 구분으로 읽히고, 처음에는 비슷한 회차의 반복으로 느껴지던 것이 실은 조건만 바꿔 되풀이하는 대조 실험이었다는 사실도 이때 보인다.
1화 부제가 「시작과 끝의 프롤로그」이고 24화 부제가 「끝과 시작의 프롤로그」다. 두 낱말의 순서만 맞바꿔 놓았다. 이 작품이 두 번 볼 것을 전제하고 만들어졌다는 가장 노골적인 신호다.

첫 시청에서는 소란스러운 인물로 보인다. 그 소란이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가 두 번째 시청에서 볼 거리가 된다
연출이 수다를 견디는 방법
공동 감독은 하마사키 히로시와 사토 타쿠야, 시리즈 구성은 하나다 줏키, 제작은 WHITE FOX다. 하마사키는 이 작품 전에 테크노라이즈(2003)와 시구루이(2007)를 감독했다. 대사가 극도로 적고 정지 화면을 길게 버티는 작품들이다. 그 사람이 온종일 떠드는 아키하바라 코미디의 공동 감독으로 왔다.
결과는 화면에 남아 있다. 인물이 떠드는 동안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인물을 화면 구석으로 몰거나, 얼굴을 반쯤 잘라 놓거나, 뒤통수만 잡은 채 대사를 끌고 간다. 수다가 길어질수록 구도는 불안해진다. 웃긴 장면인데도 화면이 편하지 않은 이유이고, 중반 이후 이야기의 온도가 바뀔 때 연출을 새로 갈아 끼울 필요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오프닝 「Hacking to the Gate」가 24화 내내 한 번도 교체되지 않는 것도 같은 판단으로 본다. 이 작품은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알려 주는 신호를 관객에게 거의 주지 않는다.

연구소 바깥에서 온 인물. 설명을 요구하는 위치에 놓여 있어 시청자의 대리인 노릇을 한다
두 번의 시청을 따로 적는다
첫 시청만 놓고 보면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내려간다. 앞의 열한 편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작품의 책임이고, 그 시간을 버티게 할 장치를 충분히 두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농담의 밀도가 회차마다 고르지 않아 같은 구조가 어떤 회차에서는 헐겁게 지나간다.
두 번째 시청까지 포함하면 평가가 크게 올라간다. 같은 24화가 완전히 다른 밀도로 다시 돌아간다. 두 번 보게 만드는 작품은 흔하지만, 두 번째에 첫 번째와 다른 것이 보이도록 설계된 작품은 드물다. 내가 이 작품을 높이 보는 근거는 두 번째 시청에 있다.
남은 문제 하나는 적어만 둔다. 게임에서 앞부분의 잡담은 플레이어가 직접 통과하는 시간이고, 애니메이션에서는 지켜보는 시간이다. 통과와 관람은 같은 열한 편을 다른 무게로 만든다. 분기를 걷어낸 이 판본이 원작보다 나은지는 두 번을 보고도 정하지 못했다.
세 번째로 볼 계획은 아직 없다. 두 번째가 남긴 것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