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작품에 따라붙은 말 셋을 옮겨 놓고 하나씩 답한다. 앞의 둘은 반박하고 마지막 하나는 반박하지 않는다.

주술회전 2기

MAPPA니까 이 정도 화면이 나온다

작화를 제작사의 체급으로 설명하는 방식인데, 화면에 실제로 남은 것은 총량이 아니라 배분이다. 1화부터 5화까지의 회옥·옥절 편은 인물 컷 수가 적고 정지 화면과 배경으로 버티는 구간이 길다. 뒤에 쓸 것을 남긴 결과로 본다.

배분의 지도는 부제에 그대로 나와 있다. 8·9화가 시부야 사변, 14·15화가 동요, 16·17화가 벽력, 18~20화가 시비, 21·22화가 변신이다. 같은 부제를 두세 편에 걸쳐 이어 쓴다는 것은 사건 하나를 여러 회차로 잘라 편다는 뜻이다. 전 23화 가운데 이런 연작 부제가 붙은 회차가 절반을 넘는다. 그렇게 자르려면 그 구간에 인력을 몰아넣어야 하고, 몰아넣은 만큼 다른 데서 뺀다. 회차별 편차는 이 산수에서 나온 결과다.

고죠 사토루

이 인물의 전투 회차에 인력이 몰려 있다. 어디에 몰아줄지가 곧 이 시즌의 편성표다

캐릭터 디자인은 히라마츠 타다시와 코이소 사야카가 맡았다. 히라마츠는 기생수 세이의 격률과 유리!!! on ICE의 캐릭터 디자인을 한 사람이다. 하나는 신체가 변형되는 공포를, 하나는 피겨 스케이팅의 동작을 그렸다. 둘 다 인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매 컷 책임져야 하는 기획이고, 이 시즌의 액션도 같은 부담을 진다. 감독은 1기의 박성후에서 고쇼조노 쇼타로 바뀌었고 시리즈 구성은 세코 히로시가 이어 맡았다.

원작은 주간 소년 점프 연재작이다. 주간 연재는 한 회 분량이 짧고 매주 끊기므로 절정이 자주 온다. 그 호흡을 23화짜리 영상으로 옮기면 절정의 밀도를 전부 유지할 수 없다. 이 시즌이 고른 해법은 절정의 수를 줄이는 대신 그 사이의 회차를 얇게 만드는 것이었다. 앞 쿨이 조용한 이유이자 뒤 쿨이 쉬지 않고 달리는 이유다.

회차 편차가 심해서 몰입이 깨진다

사실이다. 다만 원인을 실수에서 찾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시즌은 2023년 7월부터 12월까지 2쿨을 쉬지 않고 붙여 전 23화를 냈다. 1쿨 기획과 달리 2쿨 연속 편성은 후반 회차를 만드는 기간과 앞 회차를 내보내는 기간이 겹친다. 편차가 있느냐보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살렸느냐를 물어야 한다. 이 작품은 인물 비례가 흔들리는 회차를 감수하고 액션이 끊기지 않는 구간을 살렸다.

포기한 흔적도 눈에 보이는 데 있다. 원경에서 인물을 작게 잡아 세부를 생략하는 컷, 대사만 흐르는 정지 화면, 같은 각도를 다시 쓰는 컷이 특정 회차에 몰려 있다. 매주 보는 사람에게 이것은 지난주보다 못한 화면으로 보인다. 몰아서 보면 같은 구간이 숨을 고르는 대목으로 읽힌다. 같은 편성이 시청 방식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는다.

쿨 경계는 소리로도 표시된다. 앞 쿨의 주제가는 키타니 타츠야의 「아오노 스미카」와 사키야마 소우시의 「아카리」이고, 뒤 쿨은 King Gnu의 「SPECIALZ」와 히츠지분가쿠의 「more than words」로 통째로 갈렸다. 회옥·옥절 편과 시부야 사변 편은 같은 시즌 안에 있지만 다른 기획처럼 취급된다.

그래서 두 쿨은 따로 놓고 봐야 한다. 앞 쿨은 조용히 깔아 두는 구간이고, 뒤 쿨은 다시 돌려 보게 되는 회차가 몰려 있는 구간이다. 이 시즌은 크런치롤 애니메이션 어워드 2024에서 올해의 작품상을 포함해 11개 부문을 받았는데, 수상 부문이 감독·액션·오프닝·엔딩처럼 특정 구간에서 결판나는 항목에 몰려 있다.

게토 스구루

앞 쿨의 중심에 놓인 인물. 액션보다 대화와 정지 화면이 많은 구간을 혼자 떠받친다

제작 현장 이야기를 알고 나면 예전처럼 볼 수가 없다

이건 반박하지 않는다. 방영 중에 현장의 노동 강도를 두고 공개적인 문제 제기가 나왔고, 그 뒤로 이 화면의 밀도를 감탄만으로 보기는 어려워졌다. 앞의 두 문단에서 나는 배분과 편성이라는 말로 편차를 설명했는데, 그 말들은 결국 누군가의 시간을 어디에 몰아 썼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의 두 주장에는 답할 말이 있었고 이 마지막 주장에는 없다. 화면에 남은 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묻는 일은 작품 바깥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