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극장판이 원작에서 무엇을 잘라내고 무엇을 대신 놓았는지를 대조해 적는다. 원작은 오이마 요시토키가 주간 소년 매거진에 연재한 전 7권이고 영화는 130분이다. 단순히 나누면 한 권에 19분이 돌아간다.

잘라낸 것, 조연들의 동기
원작 중반은 인물이 불어나는 구간이다. 사하라 미요코, 우에노 나오카, 카와이 미키가 각자의 사정을 안고 이시다 쇼야 주변에 모이고, 영화를 만든다는 공동 작업이 그들을 한자리에 묶는다. 극장판은 이 영화 제작 줄기를 크게 줄이고 인물들의 배경 설명도 대부분 걷어냈다. 결과는 분명하다. 130분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되고 나머지는 그 두 사람을 둘러싼 조건이 된다.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다만 대가가 있다. 원작에서 우에노 나오카가 내뱉는 말들은 그의 사연이 먼저 깔린 뒤에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사연 없이 말만 남는다. 이 인물이 유독 자주 오독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색이 잘라낸 것은 분량이 아니라 동기다. 분량은 줄여도 이야기가 서지만 동기를 줄이면 인물이 납작해진다.
대신 놓은 것, 얼굴을 지우는 표시
가장 눈에 띄는 추가는 원작에 없는 화면 장치다. 쇼야의 시점에서 타인의 얼굴에 가위표가 붙는다. 만화에서 이 상태는 독백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것을 한 장의 그림으로 바꿨다. 감독 야마다 나오코와 캐릭터 디자인 니시야 후토시가 붙인 이 표시는 130분 내내 규칙으로 작동한다. 관계가 움직이면 표시가 떨어지고, 떨어지는 순간이 곧 사건이다. 설명 없이 상태를 보여 주는 방법이자 잘라낸 시간을 벌충하는 방법이다.
야마다 나오코의 화면 습관도 그대로다. 얼굴 대신 발끝과 손끝과 무릎을 잡는 컷이 많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이 습관은 여기서 주제와 정확히 겹친다. 감독의 버릇이 작품의 논리가 되는 드문 경우다.

이 인물의 시점이 화면의 규칙을 정한다. 그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관객에게도 가려진다
음악이 끊기는 대목
각본은 요시다 레이코, 음악은 우시오 켄스케다. 우시오는 전자음과 피아노를 섞어 쓰는데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음악이 나오는 대목보다 음악이 끊기는 대목이다. 소리가 갑자기 빠지고 화면만 남는 구간이 여러 번 있고, 그 구간은 대개 청각장애를 가진 인물이 듣는 것을 관객에게 그대로 옮겨 놓는다. 주제가는 aiko의 「恋をしたのは」이고 도입부에는 더 후의 「My Generation」이 쓰였다. 「My Generation」은 원작 1권의 공기를 그대로 옮긴 선택이다.

하야미 사오리의 발성 자체가 이 영화의 조건이다. 소리가 빠지는 구간과 짝을 이룬다
시점을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
원작 만화는 여러 인물의 속마음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칸 바깥의 여백에 누구의 것인지 밝히지 않은 문장이 얹히는 식이다. 극장판은 그 자유를 포기했다. 130분의 거의 전부가 쇼야가 보고 듣는 범위 안에 머문다. 가위표가 규칙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도 시점을 넘기지 않기 때문이다. 시점을 하나로 묶은 대신 잃은 것이 조연들의 동기이고, 얻은 것이 화면의 일관성이다. 둘은 같은 결정에서 나왔다.
수화 장면의 처리도 같은 원칙 위에 있다. 니시미야 쇼코의 말은 자주 손으로 나오고, 그중 일부는 자막이나 통역 없이 지나간다. 관객은 쇼야와 같은 속도로 알아듣거나 못 알아듣는다. 원작에서 이 장면들은 손 모양 옆에 글자를 붙여 처리되는데, 영화는 그 글자를 지우고 관객을 화면 안쪽에 세웠다. 각색이 무엇을 잘라냈는지만 세면 이 영화를 반만 읽는 셈이다.
남는 불만 둘
하나는 조연 처리다. 위에 적은 그대로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 20분의 속도다. 7권 분량을 닫으려다 보니 원작의 여러 국면이 이 구간에 몰리고, 앞의 110분과 리듬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이 영화는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다. 그 평가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상은 완성도의 증명이지 각색의 무결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야마다 나오코는 이 영화 뒤에 『리즈와 파랑새』(2018)를 만들었고, 거기서 발끝과 손끝의 컷은 더 늘어난다. 『목소리의 형태』에서 시험한 것이 다음 작품에서 어디까지 갔는지를 확인하는 편이, 이 영화 하나를 여러 번 다시 보는 것보다 낫다. 나는 그편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