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가 세워진 뒤 처음 내놓은 장편이 이 작품이다. 나는 어느 회사든 첫 작품을 먼저 본다. 뒤에 나온 작품들은 쌓인 이력 위에서 판단되지만 첫 작품은 그럴 것이 없어서, 무엇을 할 줄 아는 집단인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1986년 8월 2일에 개봉했다.

천공의 성 라퓨타

첫 작품에 124분을 쓴다

러닝타임이 124분이다. 두 시간을 넘긴다. 새로 만든 회사가 첫 작품에 이 길이를 잡는 것은 안전한 선택이 아니다. 보통은 짧게 만들어 반응을 확인하고 다음 작품에서 길이를 늘린다. 그런데 이 작품은 광산 마을에서 시작해 공중 해적과 군대를 지나 하늘의 성까지 간다. 무대가 계속 바뀌는 구조라 배경을 그릴 양이 길이보다 더 늘어난다. 첫 작품에 이 조건을 스스로 얹었다는 뜻이다.

각본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썼다. 원작이 따로 없는 오리지널이므로 이야기의 길이를 정해 주는 바깥 기준이 없었다. 124분이라는 길이를 정한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다.

도라

공중 해적단의 두목. 적으로 나왔다가 편이 되는 인물로 나이 든 여성을 세웠다

인물 배치에 안전한 데가 없다

주인공 둘은 소년과 소녀인데, 이야기를 실제로 움직이는 인물은 도라다. 공중 해적단을 이끄는 나이 든 여성이고, 처음에는 시타를 노리다가 나중에는 같은 편이 된다. 적과 조력자를 한 인물에 겹쳐 놓으면 관객이 편을 고르는 일이 어려워진다. 반대편에 놓인 무스카는 정부 기관 사람이다. 괴물이나 마왕 대신 제도 안에 있는 사람을 가장 위험한 인물로 세운 것도 첫 작품치고는 무른 선택이 아니다.

성우도 그 배치에 맞췄다. 파즈에 다나카 마유미, 시타에 요코자와 케이코, 도라에 하츠이 코토에, 무스카에 테라다 미노리다. 음악은 히사이시 조가 맡았고 주제가 「君をのせて」는 이노우에 아즈미가 불렀다.

무스카

제도 안쪽에 있는 인물이 가장 위험한 상대로 나온다. 이 배치는 이후 이 스튜디오에서 반복된다

주제가가 한 곡뿐이다

이 영화에는 삽입곡이 여럿 있지만 주제가로 세운 것은 「君をのせて」 한 곡이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노래를 한 곡만 두는 것은 요즘 기준으로는 드문 배치다. 음악을 히사이시 조가 전담했다는 것과 같이 놓으면 뜻이 분명해진다. 노래로 구간을 나누지 않고 관현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겠다는 것이다. 무대가 세 번 바뀌는 이야기에서 이것은 위험을 하나 더 지는 선택이다. 장면이 갈릴 때 곡을 갈아 끼워 표시해 주는 방법을 스스로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음악을 전담하는 배치는 이후 이 스튜디오에서 오래 반복된다. 첫 작품에서 정해진 것이 습관이 된 경우로 보이고, 그래서 첫 작품을 들여다볼 값이 있다.

오리지널이라는 조건

원작이 없다는 것은 각색의 부담이 없다는 뜻이면서 기댈 데도 없다는 뜻이다. 만화나 소설을 옮기면 어떤 장면이 인기 있었는지가 이미 확인돼 있는데, 이 작품에는 그 정보가 없었다. 무엇을 넣고 뺄지를 전부 안에서 정해야 했다는 뜻이다. 광산 마을·공중 해적선·하늘의 성이라는 세 무대를 고른 것도 그런 조건에서 나온 결정이다.

1986년과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

하나로 뭉뚱그리면 지금 보는 사람의 기준인지 그때의 기준인지가 사라진다.

  • 1986년 기준: 새 회사의 첫 장편이 두 시간을 넘기고 무대를 세 번 갈아 끼운다. 무모한 선택을 하고 성공했다
  • 지금 기준: 그 무모함이 표준이 되어 버려서 처음 나왔을 때의 크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인물 배치는 지금 봐도 낡지 않았다

한국에는 개봉이 한참 늦어 2004년 4월 30일에야 들어왔다. 그 시차 때문에 국내에서는 첫 작품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스튜디오의 옛 작품으로 만나게 됐다.


사십 년 가까이 지난 뒤에 이 영화가 세운 기록 하나를 적어 둔다. 2013년 일본 TV 재방영 때 특정 대사를 맞춰 올린 동시 트윗이 초당 14만 건을 넘어 당시 세계 기록이 됐다. 첫 작품이 남길 수 있는 흔적치고는 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