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두고 벌어지는 말다툼은 대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을 심사하면서 같은 단어를 쓴 결과다. 용어부터 갈라 놓고 시작한다.

체인소 맨

심사대는 하나가 아니다

작화는 그리는 일이다. 연출은 무엇을 얼마나 보여 줄지 정하는 일이다. 각색은 매체를 옮기면서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일이다. 셋은 서로 다른 심사대이고, 한 작품이 하나에서 만점을 받으면서 다른 하나에서 낙제할 수 있다.

2022년 4분기 방영, MAPPA 제작, 전 12화. 감독 나카야마 류, 시리즈 구성 세코 히로시, 캐릭터 디자인 오시야마 키요타카, 음악 우시오 켄스케. 첫 번째 심사대에서 이 12화는 다툴 여지가 별로 없다. 카메라가 끊기지 않고 움직이고, 채도가 낮게 잡혀 있고, 빛과 그림자가 실사 촬영의 문법을 따른다. 이걸 두고 잘 그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틀린 말을 하고 있지 않다.

만화의 칸과 영상의 화면은 다른 단위다

문제는 세 번째 심사대에서 시작된다. 만화는 칸의 크기와 여백으로 리듬을 만든다. 큰 칸 하나가 지면을 통째로 차지하면 독자는 거기서 멈추고, 작은 칸이 연달아 붙으면 눈이 빨리 지나간다. 독자가 지면 위에서 속도를 직접 만든다.

영상에는 칸 크기가 없다. 화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크기다. 그래서 만화가 칸으로 만들어 내는 속도 차이를 영상으로 옮기려면 다른 도구를 써야 한다. 컷의 길이, 카메라가 움직이는 속도, 소리의 크기, 그리고 정지. 이 작품은 그 도구를 전부 연속성에 몰아 썼다. 끊지 않고 이어 붙이는 방향을 고른 것이다.

매끄럽게 이어 붙이면 장면과 장면 사이의 온도 차이는 줄어든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원작은 그 온도 차이로 굴러가는 만화다. 무거운 장면 옆에 유치한 장면을 붙이고, 얼굴을 망가뜨렸다가 다음 칸에서 정색한다. 그 간격이 이 만화의 농담이자 서늘함이다. 영상판은 그 간격을 좁혔다. 화면이 좋아졌다는 말과 간격이 줄었다는 말은 동시에 성립한다.

덴지

원작에서 이 인물의 얼굴은 훨씬 자주 무너진다. 무너지는 폭이 곧 캐릭터의 절반이다

그래서 양쪽 말이 둘 다 맞는다

  • 작화가 좋다는 말은 첫 번째 심사대의 판단이다. 맞다
  • 재미가 덜하다는 말은 세 번째 심사대의 판단이다. 이것도 맞다. 두 말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심사대가 다를 뿐이다
  • 연출이 무겁다는 말은 관찰에 가깝다. 실제로 무겁게 잡았다

틀린 말은 하나뿐인데, 상대를 화면 볼 줄 모르는 사람으로 부르는 말이다. 그 말은 세 개의 심사대를 하나로 합쳐 버린다.

왜 그 방향을 골랐나

MAPPA는 이 12화를 제작위원회 없이 단독 출자해 만들었다. 위원회가 없으면 맞춰야 할 상대가 적고, 그만큼 하고 싶은 것을 밀어붙일 수 있다. 그 자유가 어디로 향했는지는 결과물이 말해 준다. 오프닝 「KICK BACK」은 요네즈 켄시가 맡아 빌보드 글로벌 차트에 올랐고, 엔딩은 매 화 다른 아티스트로 열두 곡이 만들어졌다.

편성에 관한 사실도 하나 붙여 둔다. 이 12화가 다루는 것은 원작 1부의 앞부분까지다. 12화 부제가 「일본도 VS 체인소」인 데서 보이듯 시즌은 하나의 대결로 닫히고 그 뒤에 놓인 이야기에는 손대지 않는다. 한 기수 안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기로 한 편성이므로, 회차마다의 마감을 사건 대신 화면과 소리의 질감이 맡아야 한다. 엔딩을 열두 곡으로 쪼갠 결정은 사치이기 이전에 구조적 필요였다.

2025년에 나온 극장판은 반례로 읽을 만하다. 같은 제작사가 러닝타임을 확보하자 결과가 달라졌다. 그렇다면 12화 시리즈에서 간격이 좁아진 것은 실력보다 분량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 1회 24분 안에서 매주 그만한 온도 차이를 만들어 내려면 무엇인가는 잘려 나간다. 잘려 나간 것이 하필 원작의 정체성에 가까웠을 뿐이다.


매주 다른 엔딩을 붙이는 일은 만화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면에는 곡을 걸 방법이 없다. 열두 곡의 엔딩은 이 팀이 원작을 옮기려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매체로 다시 만들려 했다는 가장 솔직한 진술이다. 그 진술은 12화 내내 흔들리지 않았다. 동의하든 아니든,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따로 세어 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