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나드 1기의 구성이 옴니버스처럼 보이는 이유를 먼저 적는다. 연출 취향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고 원작이 비주얼 노벨이라는 사실의 결과다. 그 매체는 관객이 갈림길에서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 길이 그 회차 안에서는 사라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에는 고를 사람이 없다. 그러면 갈림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클라나드

원작에는 길이 여럿이고 한 번에 하나만 간다

원작은 Key/Visual Art's 의 비주얼 노벨이고 「AIR」·「Kanon」과 함께 Key 3부작으로 불린다. 이 계열의 작품은 인물마다 이야기가 갈라지고, 한 번 플레이할 때 그중 하나만 끝까지 간다.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보려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되돌아감이 관객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이다. 매체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그 길들을 시간 위에 차례로 늘어놓았다

이 1기는 전 23화이고, 그중 22화가 정규 방영분, 마지막 23화가 번외편이다. 회차 부제를 순서대로 읽으면 이야기가 인물별로 묶여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10화 「천재 소녀의 도전」, 16화 「3 대 3」, 18화 「역전의 비책」, 20화 「감춰진 과거」처럼 한 인물의 사연이 몇 화씩 이어지다 닫히고 다음 인물로 넘어간다.

원작에서 나란히 놓여 있던 길을 시간 축 위에 한 줄로 펴서 이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아크가 닫힐 때마다 인물 사이의 거리가 얼마간 처음 상태로 돌아간다. 이 되돌아감을 게으른 구성이라고 읽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매체를 옮기면서 남은 자국이라고 본다. 원작에서 그 대목에 있던 것은 다시 시작하기였다.

후루카와 나기사

여러 길 중 하나만 끝까지 가는 매체에서, 한 인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방법은 따로 있다

한 줄로 편 대가는 중심이 흐려진다는 것

대가는 분명하다. 원작에서 한 번의 플레이가 한 인물에게 온전히 쓰였다면, 한 줄로 편 애니메이션에서는 스물세 화를 여럿이 나눠 쓴다. 어느 인물도 스물세 화를 다 받지 못한다. 1기를 다 보고도 이 작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한 문장으로 적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제작진이 그것을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엔딩곡이 「だんご大家族」(당고 대가족)이라는 점을 같이 놓고 보면 그렇다. 이 곡이 가리키는 것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말 자체이고, 그 주제는 속편 「애프터 스토리」(2008)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1기는 처음부터 자기가 앞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만들어졌다.

같은 팀이 같은 문제를 세 번 풀었다

이 대목에서 제작사를 보면 이야기가 한 겹 더 붙는다. 교토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 전에 「AIR」와 「Kanon」을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Key 3부작을 셋 다 같은 팀이 옮긴 것이다. 갈림길이 있는 원작을 한 줄로 펴는 문제를 세 번 연달아 풀었다는 뜻이고, 그 경험이 이 23화의 배분에 반영돼 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주제가에도 같은 자국이 있다. 오프닝 제목이 「メグメル ~cuckool mix 2007~」이다. 제목 안에 2007년판이라는 표시가 들어 있다는 것은 그 이전 판본이 있다는 말이다. 노래조차 새로 쓰지 않고 앞에 있던 것을 다시 편곡해 가져왔다. 매체를 옮길 때 무엇을 새로 만들고 무엇을 그대로 들고 오는지가 여기서도 갈린다.

마지막 23화가 번외편이라는 점도 같은 이야기에 놓인다. 스물두 화로 본편을 닫고 한 화를 밖에 두는 편성은 본편에 넣을 자리가 없었던 이야기가 있었다는 표시다. 원작에서 갈라져 있던 길을 한 줄로 펴면 반드시 줄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 생긴다.

1기에서 멈추면

아쉬운 점은 방금 적은 것에 붙는다. 앞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만든 앞부분은 뒤가 없으면 값이 다 치러지지 않는다. 1기에서 멈추는 사람에게 이 스물세 화는 여러 사람의 사연을 차례로 지나온 기록이고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지는 않는다. 제작은 교토 애니메이션, 감독은 이시하라 타츠야, 시리즈 구성은 시모 후미히코, 캐릭터 디자인은 이케다 카즈미이고 2007년 4분기에 방영했다.


앞에서 적은 결론으로 돌아간다. 이 구성은 취향의 산물이 아니고 매체를 옮기면서 남은 자국이다. 그러니 이 1기를 볼 때 물어야 할 것은 왜 이렇게 나눴는가보다, 나눌 수밖에 없는 원작을 나누지 않을 방법이 있었는가다. 나는 없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