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볼 때 나는 노트에 규칙을 옮겨 적었다. 작중에서 제시되는 사용 규칙 말이다. 옮겨 적고 나니 그것이 세계관 설명보다는 각본가가 자기 손을 묶어 놓은 목록으로 보였다. 규칙 넷을 골라 각각이 이야기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적는다.

규칙 1. 이름을 써야 한다
가장 먼저 나오는 규칙이자 가장 단순한 규칙이다. 이 하나만 있으면 주인공은 무적이다. 그래서 이 규칙이 하는 일은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목표를 이름 하나로 좁혀 놓는 것이다. 수사하는 쪽이 해야 할 일도 자동으로 정해진다. 범인을 잡는 일보다 범인에게 이름을 알려 주지 않는 일이 먼저다. 추격물의 방향이 거꾸로 뒤집힌다.
규칙 2. 얼굴을 알아야 한다
각본상 가장 중요한 규칙이다. 이것이 없으면 이 이야기는 1화에서 끝난다. 이름만으로 충분하다면 명단 하나로 세상의 모든 수사관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규칙 하나가 37화 분량을 만들어 낸다. 동명이인을 걸러 내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자"를 무적으로 만드는 장치이고, 그래서 이 작품의 두 진영은 서로 얼굴을 감추는 싸움을 하게 된다. 설정 한 줄이 장르와 연출을 동시에 정한 경우다.

이 인물이 화면에 등장하는 방식 자체가 규칙 2의 결과물이다. 얼굴을 언제 보여 주느냐가 곧 수싸움이다
규칙 3. 40초와 6분 40초
이름을 쓰면 40초 뒤에, 사인을 따로 적으면 6분 40초 안에 그것이 실행된다. 숫자가 붙은 규칙은 곧 편집의 단위가 된다. 40초는 한 장면 안에서 끝나는 길이이고 6분 40초는 한 회차의 4분의 1쯤 되는 길이다. 아라키 테츠로의 연출이 초시계와 시계 문자판을 자주 잡는 것은 규칙이 요구한 결과다. 시간을 셀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긴장은 저절로 생긴다.
규칙 4. 규칙은 늘어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새 규칙이 추가되고, 그중 일부는 앞의 규칙을 예외로 만든다. 시리즈 구성을 맡은 이노우에 토시키는 원작에 있는 규칙을 거의 그대로 옮겼는데, 만화에서는 페이지 여백에 규칙을 적어 두고 독자가 언제든 되돌아가 읽게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는 되돌아갈 여백이 없다. 화면에 규칙이 글자로 뜨는 연출이 반복되는 이유이고, 그 연출이 늘어날수록 극은 설명에 시간을 내주게 된다.

미야노 마모루의 연기는 규칙을 읊는 장면에서 가장 빨라진다. 설명을 연기로 넘기는 방법이다
규칙 5. 노트를 만진 사람만 사신을 본다
이 규칙은 앞의 넷과 성격이 다르다. 죽이는 방법 대신 보는 방법을 정한다. 류크는 화면에 또렷하게 서 있는데 대부분의 인물에게는 없는 존재로 처리된다. 같은 화면을 보는 인물들이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상태를 규칙 하나가 만들어 낸다. 연출 입장에서는 공짜로 얻은 장치다. 인물 하나를 화면에 세워 두기만 해도 누가 무엇을 아는지가 시각적으로 갈린다.
나카무라 시도의 연기가 이 규칙을 떠받친다. 이 인물은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며 말을 던지는데, 목소리에 긴장이 실리면 관객은 그가 개입할 것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끝까지 개입하지 않는 톤을 유지하는 것이 규칙을 규칙으로 남겨 두는 방법이다.
두 진영이 번갈아 화면을 쥔다
규칙이 정한 싸움이 양쪽에서 서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 노트를 쥔 쪽은 미야노 마모루의 발성이 진영의 밀도를 혼자 떠받친다. 대사량이 많고 그 대사가 대부분 혼잣말이다
- 쫓는 쪽은 야마구치 캇페이가 맡은 인물의 등장 방식이 규칙 2를 화면으로 번역한 결과다. 얼굴을 언제 어디까지 보여 주느냐가 곧 수를 두는 일이 된다
음악을 히라노 요시히사와 타니우치 히데키가 나눠 맡고 오프닝을 나이트메어가 부른 배치도 두 진영의 온도 차와 어긋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관객이 규칙을 외우기를 포기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내 경우에는 규칙이 앞의 규칙을 뒤집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그 뒤로는 규칙을 따라가는 대신 인물의 표정을 따라가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때부터 다른 장르가 된다. 어느 쪽이 더 재미있는지는 사람마다 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