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두고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원작이 영국 소설이라 지브리 작품 중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지브리 장편 열아홉 편의 원작을 놓고 보면 그 말은 절반만 맞았다.

열아홉 편의 원작을 갈라 보면
- 오리지널 7편. 이웃집 토토로 · 천공의 성 라퓨타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모노노케 히메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 벼랑 위의 포뇨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만화 5편. 귀를 기울이면 · 고양이의 보은 · 코쿠리코 언덕에서 · 바람이 분다 · 추억은 방울방울
- 소설 6편. 마녀 배달부 키키 · 반딧불이의 묘 · 하울의 움직이는 성 · 마루 밑 아리에티 · 아야와 마녀 · 추억의 마니
- 설화 1편. 가구야공주 이야기
여기서 소설 여섯 편만 다시 본다. 카도노 에이코와 노사카 아키유키는 일본 작가다. 나머지 넷은 영국 작가다. 다이애나 윈 존스(하울·아야와 마녀), 메리 노턴(마루 밑 아리에티), 조안 G. 로빈슨(추억의 마니)이다.
그래서 무엇이 틀렸나
영국 소설을 옮긴 것이 이 한 편뿐이라는 전제가 틀렸다. 열아홉 편 중 넷이 영국 아동문학이고, 그중 둘은 같은 작가다. 다이애나 윈 존스의 책이 지브리에서 두 번 영화가 됐다. 2004년 하울과 2020년 아야와 마녀 사이가 열여섯 해다.
둘은 감독이 다르다. 하울은 미야자키 하야오이고, 아야와 마녀는 미야자키 고로다. 같은 작가의 책을 서로 다른 감독이 열여섯 해 간격으로 가져갔다는 뜻이다. 원작자 입장에서 보면 한 스튜디오가 자기 책을 두 번 골랐다는 말이 된다.

원작의 국적은 완성된 화면만 봐서는 알 수 없다
옮겨 온 거리가 길면 무엇이 달라지나
일본 소설 둘은 배경이 일본이다. 영국 소설 넷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네 편은 배경을 어디로 둘지부터 정해야 하는 작품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와 추억의 마니는 배경을 일본으로 옮겼고(둘 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 하울과 아야와 마녀는 유럽에 두었다. 둘 대 둘로 갈렸고, 배경을 옮긴 두 편의 감독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이 넷을 묶어 놓고 봐야 보이는 것이다.
이 작품을 두고 이질적이라고들 하는 인상은 아마 거기서 나온다. 지브리의 오리지널 일곱 편이 전부 일본을 배경으로 삼거나 일본 전승을 바탕에 두는데, 이 작품은 그 계열에 속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이 한 편만의 사정이 아니다. 영국 소설을 가져온 네 편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조건이다.
목소리를 누가 맡았는지도 이 세 편은 비슷하다
이 작품에서 하울은 배우 기무라 타쿠야가 맡았고 소피는 바이쇼 치에코가 맡아 주제가까지 불렀다. 둘 다 성우가 본업이 아니다. 지브리가 배우를 주연에 앉히는 일은 이 작품만의 것이 아니지만, 원작이 바깥에서 온 작품에서 그렇게 하면 결과가 한 번 더 멀어진다. 영국 소설을 일본어로 옮기고, 그 대사를 성우가 아닌 사람이 읽는다.
다른 예도 있다. 바람이 분다는 주연을 애니메이션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맡았고, 폭풍우 치는 밤에는 주연 둘 다 배우다. 일본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이건 드문 일이 아니고 자주 있는 선택이다. 이 작품을 이질적이라고 말할 때 이 대목까지 근거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맞지 않는다.
흥행은 이 인상과 반대로 갔다
일본 흥행 수입이 약 196억 엔이고, 한국 관객이 301만 명이다.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오셀라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다. 원작이 바깥 것이라 낯설다는 인상과 실제로 팔린 규모가 서로 어긋난다. 낯설다는 말이 관객 수로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인상은 작품이 실제로 받은 대접이 아니라 지브리의 다른 작품들과 나란히 놓았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아쉬운 대목
아쉬운 것은 원작과의 거리 때문이 아니다. 119분 안에 다루는 범위가 넓어 인물의 사정이 설명되지 않은 채 넘어가는 대목이 있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그걸 각색 탓으로 돌리기 쉬운데, 확인할 방법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냥 빈자리로 남는다.
남은 사실도 적어 둔다. 2004년 11월 20일 일본 개봉, 러닝타임 119분, 제작은 스튜디오 지브리다. 같은 해에 나온 작품으로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가 있다. 그쪽도 2004년 11월 20일 개봉이다. 같은 날 두 편이 걸렸다.
답하지 못한 질문을 하나 남긴다. 지브리가 일본 밖 아동문학을 가져올 때 배경을 일본으로 옮길지 그대로 둘지는 무엇이 정하는가. 옮긴 두 편(마루 밑 아리에티·추억의 마니)의 감독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감독이 정한다는 말에 힘을 실어 주는데, 표본이 네 편이라 그것만으로는 가려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