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 늘 같은 다툼이 붙는다. 저 화면이 감독의 의도인가, 아니면 시간과 돈이 모자라 나온 결과인가. 나는 이 다툼을 통째로 판정하려는 시도가 틀렸다고 본다. 항목별로 따로 봐야 한다. 여섯 가지를 골라 하나씩 판정했다.

1. 긴 정지 화면: 선택
인물이 움직이지 않는 컷이 몇 초씩 이어지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걸 예산 문제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배치가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정지 화면은 대사가 끝난 직후, 인물이 답하지 않는 대목에 놓인다. 말하지 않는 시간을 화면에 남겨 두는 방식이다. 돈이 없어 멈춘 화면이라면 대사 중간에도 똑같이 멈춰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2. 같은 컷의 반복: 둘 다
엘리베이터, 발사 시퀀스, 격납고 진입 같은 장면은 회차를 건너뛰며 같은 그림이 다시 쓰인다. 전 26화를 주간으로 내보내는 편성에서 이런 재사용은 제작 관행에 가깝다. 다만 이 작품은 그 반복을 감추지 않는다. 같은 컷을 같은 길이로, 같은 음악과 함께 다시 튼다. 관행에서 출발한 것이 반복이라는 인상 자체를 만들어 낸 경우라고 본다.

이 인물이 답하지 않는 몇 초가 이 작품의 기본 단위다. 멈춘 화면은 대개 그 대목에 놓인다
3. 흑백 자막 화면: 선택
글자만 있는 화면이 갑자기 끼어드는 연출이다. 제작비를 아끼는 방법으로 쓸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정보를 주려고 넣지 않고 정보를 끊으려고 넣는다. 장면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화면이 검게 바뀌고 글자만 남는다. 화면을 비우는 데도 계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작품은 반복해서 보여 준다.
4. 25·26화의 구성: 판정 보류
마지막 두 편이 인물의 내면을 향해 방향을 트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대해 나는 판정하지 않는다. 일정과 예산이 압박이었다는 증언과 처음부터 그 방향을 염두에 뒀다는 증언이 함께 있고, 화면만으로는 어느 쪽인지 가릴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앞의 24화가 쌓아 둔 것이 없었다면 그 두 편은 성립하지 않는다.
5. 사기스 시로의 곡 재사용: 선택
음악은 사기스 시로가 맡았고, 곡 수 자체가 많지 않다. 같은 선율이 전투에도 일상에도 붙는다. 이건 절약으로 보이지만 결과는 반대로 작동한다. 한 곡이 여러 상황에 붙으면 그 곡은 개별 상황 대신 작품 전체의 정서를 가리키게 된다. 곡 수가 적어서 생긴 통일감이다. 오가타 메구미와 미츠이시 코토노의 연기가 같은 곡 위에서 완전히 다른 온도로 얹히는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

같은 곡이 이 인물의 장면과 전투 장면에 함께 붙는다. 곡이 적다는 사실이 통일감을 만든다
6. 오프닝을 한 번도 갈지 않은 것: 선택
26화 내내 오프닝 영상과 곡이 교체되지 않는다. 후반으로 갈수록 본편의 성격이 크게 바뀌는데도 첫 90초는 1화와 똑같은 것이 나간다. 곡을 새로 만들 여력이 없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영상만이라도 손보는 편이 훨씬 싸다. 둘 다 손대지 않았다. 매주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가게 만든 뒤 방 안을 계속 바꾸는 구조이고, 이건 돈이 아니라 판단의 문제다. 1995년 4분기부터 이듬해 3월까지 주간으로 방영된 작품이라 시청자는 그 문을 스물여섯 번 열었다.
판정을 모으면
- 긴 정지 화면: 선택
- 같은 컷의 반복: 관행에서 출발해 방법이 됨
- 흑백 자막 화면: 선택
- 25·26화의 구성: 보류
- 곡 재사용: 선택
선택으로 판정한 셋은 지금 봐도 낡지 않았고, 보류로 남긴 하나가 이 작품을 여전히 논쟁거리로 만든다.
덧붙인다. 위 판정 가운데 몇 개는 자료가 더 나오면 뒤집힐 것이다. 1995년 4분기에 만들어진 물건이고, 당시 현장의 사정을 나는 기록으로만 안다. 판정을 내리되 그 판정이 잠정이라는 것도 함께 적어 두는 편이 정직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