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이름이 두 번 겹친다. 하나는 두 배역을 함께 맡은 성우이고, 다른 하나는 감독의 앞 작품에서도 음악을 맡았던 사람이다. 90분짜리 영화의 설계가 이 두 사람에게 거의 다 들어 있다.

파프리카

첫 번째 겹침은 한 사람이 두 배역을 맡은 것이다

파프리카와 치바 아츠코를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함께 맡았다. 두 배역은 각각 다른 인물로 소개되고 화면에서도 따로 나오는데, 목소리는 하나다. 배역표를 먼저 본 관객은 이 영화가 무엇을 하려는지 첫 장면 전에 알게 된다. 감추려 했다면 다른 배우를 쓰거나 크레딧에서 한쪽을 가릴 수 있었다. 감추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의 태도다. 두 인격을 두고 누가 진짜냐를 묻는 이야기라기보다, 둘이 같다는 것을 알고 보라는 이야기에 가깝다.

파프리카

배역표에서 이 인물과 치바 아츠코가 같은 이름을 달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알려 주는 정보다

두 번째 겹침은 음악을 맡은 사람이 같다는 것이다

음악은 히라사와 스스무다. 곤 사토시의 앞 작품 「천년여우」(2001)에서도 그가 음악을 맡았다. 두 편을 이어 놓으면 이 감독이 음악에 무엇을 기대했는지가 보인다. 두 작품 다 시간과 공간이 이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굴러가고, 그 이음매를 대사나 자막이 아니라 소리가 메우게 되어 있다. 장면이 어디로 튀든 같은 곡이 계속 흐르면 관객은 그 곡을 기준선으로 삼는다. 한 사람에게 두 편을 맡긴 이유는 취향보다 구조에 있어 보인다.

각본은 곤 사토시가 미나쿠치 세이시와 함께 썼고,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은 안도 마사시다. 영화는 90분이고 원작 소설은 그보다 훨씬 길다. 무엇을 덜어 냈는지가 이 각색의 핵심일 텐데, 덜어 낸 만큼을 메운 것도 결국 위의 두 사람이다.

토키타 코사쿠

꿈을 공유하는 장치를 만든 인물이다. 사건의 발단은 기술이 아니고 관리 소홀이라는 배치다

원작이 소설이라는 것

원작은 츠츠이 야스타카의 소설이다. 소설에서 꿈을 그리는 방법은 문장뿐이라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를 서술자가 정해 줄 수 있다. 영화에는 그 서술자가 없다. 어디까지가 꿈인지 알려 주는 장치를 화면 밖에 둘 수 없다는 것이 각색의 가장 큰 제약이다. 그 제약을 배역표와 음악으로 넘긴 것이 위에서 적은 두 겹침이다.

각본은 곤 사토시와 미나쿠치 세이시 두 사람 이름으로 올라 있다. 감독이 각본에 직접 이름을 올리는 경우 각색에서 무엇을 버릴지가 연출 판단과 함께 정해진다. 이 작품에서 그 판단은 분량으로 갔다. 소설 한 권을 90분에 넣는다는 것은 덜어 낸 양이 남긴 양보다 많다는 뜻이다.

90분이라는 길이가 붙이는 조건

이 영화는 90분이다. 극장 애니메이션에서 짧은 편이고, 소설 한 권을 옮기기에는 특히 짧다. 짧은 길이에 두 인격과 여러 인물을 넣으려면 설명에 쓸 시간이 거의 없다. 위의 두 겹침이 그 설명을 대신한다. 성우 배역표가 인물 관계를 한 줄로 알려 주고, 음악이 장면 사이의 이음매를 맡는다. 설명을 크레딧과 소리에 나눠 맡긴 구성이다.

조연 배치도 그 방향이다. 토키타 코사쿠에 후루야 토오루, 코나카와 토시미에 오오츠카 아키오가 붙었다. 둘 다 목소리만으로 인물의 나이와 위치가 잡히는 배우들이고, 그런 배우를 쓰면 인물을 소개하는 데 드는 분량이 줄어든다. 90분 안에서 이건 작은 절약이 아니다.

점수는 매기지 않는다

이 영화에 숫자를 붙이는 일이 잘 안 된다. 대신 어느 칸에 놓겠는지를 적는다. 나는 이 영화를 "한 번 보고 나서 무슨 얘기였는지 남에게 설명하기 어려운데도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 칸에 놓는다. 그 칸에는 몇 편 없다.

기록해 둘 사실 몇 가지. 2006년 11월 25일 일본 개봉이고 한국에는 2007년 11월 3일에 들어왔다. 제6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다. 제작은 매드하우스다.


그리고 이것이 곤 사토시가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다. 위의 두 겹침이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쓰였을지는 이제 확인할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