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 붙는 딱지가 세 개다. 첩보물, 가족물, 학원물. 세 개를 다 붙이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 파트 1의 열두 편을 놓고 셋을 하나씩 저울에 올려 봤다.

스파이 패밀리

첩보물로 재면

첩보물의 핵심은 정보의 비대칭이다. 누가 무엇을 아는지, 그 차이가 긴장을 만든다. 이 작품은 그 조건을 갖췄다. 세 사람이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한 집에 산다. 문제는 그 비대칭이 위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들킬 뻔한 순간이 오면 대개 우연이 그것을 덮는다. 첩보물이라면 그 우연이 반복될수록 장르가 헐거워진다. 저울은 이쪽에서 가장 가볍게 나온다.

가족물로 재면

가족물의 조건은 인물들이 서로에게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로이드 역의 에구치 타쿠야, 요르 역의 하야미 사오리, 아냐 역의 타네자키 아츠미가 한 화면에 있을 때 대사의 주고받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 임무 장면에서는 빠르고 식탁에서는 느리다. 연기 지시가 장르를 나누고 있다는 뜻이다. 저울은 이쪽으로 기운다.

아냐 포저

세 사람 중 유일하게 다른 둘의 사정을 아는 인물. 정보의 비대칭이 이 아이 한 명에게 몰려 있다

학원물로 재면

파트 1의 후반은 학교로 무대가 옮겨 간다. 입학 시험, 반 배정, 급우와의 충돌 같은 학원물의 표준 절차가 순서대로 나온다. 다만 이 무대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학교에 가는 이유가 임무이므로 학원물의 사건이 임무의 진척으로 환산된다. 장르라기보다 장치에 가깝다.

제작 체제가 그 혼합을 감당한다

이 작품은 WIT STUDIO와 클로버웍스가 함께 만들었다. 두 스튜디오가 한 작품을 나눠 맡는 편성은 흔하지 않다. 감독과 시리즈 구성을 후루하시 카즈히로가 겸해 방향을 한 손에 쥐고, 캐릭터 디자인은 시마다 카즈아키와 이지마 케이코가 함께 맡았다. 장르가 셋으로 갈라지는 작품에서 제작 주체도 둘로 갈라져 있는데 화면의 톤이 흔들리지 않는다. 음악을 (K)NoW_NAME이 통으로 맡아 회차의 성격이 바뀌어도 소리는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도 여기에 한몫한다.

파트 1 열두 편이 나뉘는 지점

저울질을 마치고 나면 편성이 눈에 들어온다. 파트 1은 앞쪽에서 가족을 만들고 뒤쪽에서 학교로 들어간다. 앞의 절반이 가족물, 뒤의 절반이 학원물이며 첩보물은 두 구간 모두에 얇게 깔려 있다. 세 장르가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순서대로 배치돼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굴리면 충돌할 것을 시간으로 나눠 놓은 구성이고, 12화라는 분량에서는 이 방법이 안전하다.

아냐가 그 사이를 잇는 장치다. 이 인물만 다른 두 사람의 사정을 알고 있어서, 가족 장면에서도 첩보의 긴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타네자키 아츠미의 연기가 웃음과 초조함을 같은 대사 안에서 오가는 것도 그 때문이고,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첩보물의 조건이 여기서 코미디의 연료로 바뀐다. 세 사람 중 한 명에게만 정보를 몰아 준 것은 각본이 내린 가장 큰 결정이고, 그 결정 하나로 이 작품은 세 장르를 동시에 걸치고도 무너지지 않는다.

저울질을 정리하면

  • 첩보물로서. 비대칭은 만들었으나 그것으로 위기를 만들지 않는다
  • 가족물로서. 연기 속도와 화면 밀도가 식탁 장면에 몰려 있다
  • 학원물로서. 절차는 갖췄지만 목적이 바깥에 있다

세 장르를 다 걸친 작품에서는 가장 약한 고리가 전체 인상을 정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첩보물이고 가장 튼튼한 고리는 가족물이다.


결국 분류는 포기한다. 이 작품에 맞는 이름을 새로 붙이자면 첩보 설정을 가족 코미디의 연료로 태우는 물건이다. 첩보는 소재이고 학원은 무대이며 실제로 굴러가는 것은 세 사람이 한집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다. 그 이름으로 보면 이 작품에 실망할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