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비만 따라가 봤다. 46분 동안 비는 계속 오지 않는다. 비가 오고 그치는 때가 정해져 있고, 그 때가 이야기의 뼈대와 정확히 겹친다. 비를 따라가면 이 영화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보인다.

비가 만남의 조건이다
두 사람이 정원에서 마주치는 조건은 간단하다. 비 오는 날 오전이다. 아키즈키 타카오는 비가 오면 학교에 가지 않고, 유키노 유카리는 비가 오면 그 자리에 있다. 즉 이 영화에서 비는 배경이 아니라 두 사람을 같은 좌표에 놓는 장치다. 날씨가 만남의 필요조건인 이야기라 장마철을 무대로 잡은 것도 필연이다.
그러면 비가 그치는 날은 이야기가 멈추는 날이다. 실제로 화면은 그런 날을 학교와 구두 작업대와 식탁으로 채운다. 만남이 없는 시간을 생활로 메우는 구조다.
비를 그리는 데 든 것
제작은 코믹스 웨이브 필름, 감독과 각본은 신카이 마코토, 작화감독은 츠치야 케이이치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자원이 들어간 곳은 물이다. 잎에 맺혔다 떨어지는 물방울, 웅덩이에 번지는 파문, 우산 천을 때리는 낱낱의 빗줄기가 각각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빗줄기를 한 덩어리로 처리하지 않고 층으로 나눈 화면이라, 같은 비인데도 회차마다 무게가 다르게 보인다.
음악은 카시와 다이스케다. 피아노 한 대에 가까운 편성이라 빗소리와 주파수가 겹치지 않는다. 비가 오는 장면에서 음악이 물러나고 소리만 남는 구간이 여러 번 있는데, 그 구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면서 동시에 가장 시끄럽다.

이 인물이 정원에 있는 이유는 끝까지 조금씩만 밝혀진다. 비는 그 속도를 늦추는 장치이기도 하다
비가 그친 뒤의 화면
문제는 비가 그친 뒤다. 물이 사라지면 이 영화의 화면은 평범해진다. 교실과 복도와 거리의 미술은 정성스럽지만 특별하지 않고, 인물의 표정 연기도 정원 장면만큼 촘촘하지 않다. 이리노 미유와 하나자와 카나의 대사 주고받기가 살아나는 것도 대체로 비 오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젖어 있을 때만 최고 속도로 달린다.
만요슈의 단가가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장치로 쓰이는데, 그 인용이 나오는 곳도 거의 비 오는 정원이다. 시와 비와 두 사람이 한 좌표에 묶여 있고, 그 좌표를 벗어나면 이야기가 헐거워진다.
비를 피하는 곳이 어디인가
비만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딸려 오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비를 피하는 장소다. 두 사람이 만나는 곳은 정원의 정자이고, 지붕이 있고 사방이 트여 있다. 완전히 닫힌 실내는 아니고 비만 피하게 해 주는 공간이다. 이 어중간한 공간이 두 사람의 관계와 같은 모양이다. 한쪽은 학교에 가지 않고 다른 쪽은 직장에 가지 않은 채, 둘 다 있어야 할 곳에서 벗어나 있다.
타카오가 만드는 것이 구두라는 설정도 여기에 붙는다. 구두는 걷기 위한 물건이고, 이 영화에서 걷는 일은 비를 뚫고 어딘가로 가는 일이다. 정원에 머무르는 인물이 걸어 나갈 도구를 만든다는 배치는 소품 하나로 방향을 알려 준다. 코마츠 미카코가 맡은 아이자와 쇼코가 등장하는 장면들이 대부분 실내이고 비가 없는 것도 같은 규칙 아래 있다. 비가 없는 인물과 비가 있는 인물이 화면에서 갈라져 있고, 그 구분이 이 영화에서 누가 주인공인지를 대사 없이 정해 준다.
비가 있는 화면과 없는 화면
비 오는 장면은 물을 이만큼 그린 46분이 흔치 않다고 할 만하다. 비가 오지 않는 장면은 화면도 대사도 눈에 띄게 헐거워진다. 러닝타임의 절반 가까이가 뒤쪽에 속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비 장면만으로 기억하고 있다면 실제로 보는 동안 겪는 것과는 어긋난다.
길이에 대해 한 문장만 남긴다. 46분은 이 영화가 감당할 수 있는 정확한 분량이었고, 90분이었다면 비가 그친 화면을 두 배로 더 봐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