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25화를 한 덩어리로 놓고 세는 습관부터 걷어내야 한다. 1화부터 14화까지와 15화부터 25화까지는 같은 규칙 위에 서 있지 않다. 두 구간을 갈라 놓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만 적는다.

소드 아트 온라인

앞의 14화는 규칙이 이야기의 재료가 되는 구간이다

2012년 3분기 방영, A-1 Pictures 제작, 감독은 이토 토모히코다. 원작은 카와하라 레키가 전격문고에서 낸 라이트노벨이고 시리즈 누적 발행부수는 3,000만 부에 이른다. 전반부의 무대는 부유성 아인크라드 하나뿐이고, 규칙도 하나뿐이다. 게임 안에서의 죽음이 현실의 죽음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규칙이 서사에서 맡은 역할이다. 규칙이 배경 설정으로 놓이지 않고 매 회차의 재료로 쓰인다. 5화 부제가 「권내 사건」이다. 안전지대 안에서는 공격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임 규칙 자체가 그 회차의 수수께끼가 된다. 규칙을 설명하는 회차가 아니라 규칙을 가지고 문제를 내는 회차다. 1화 「검의 세계」와 2화 「비터」에서 배운 조건이 곧바로 풀이의 도구로 돌아온다.

편성도 같은 방향으로 짜여 있다. 3화 「빨간 코의 순록」, 11화 「아침 이슬의 소녀」처럼 본편 진행과 직접 이어지지 않는 회차가 사이사이 끼어든다. 원작에서 본편 바깥에 놓여 있던 짧은 이야기들을 시간 순서에 맞춰 다시 꽂아 넣은 배치다. 이 배치가 버는 것은 분위기 환기가 아닌 시간 감각이다. 100층 공략이 몇 해에 걸친 일이라는 사실은 대사로 전달되지 않는다. 본편과 무관한 사건이 그 사이를 여러 번 지나가야 비로소 길이가 느껴진다.

덕분에 전반부는 한 편씩 떼어 놔도 읽히는 회차를 여럿 갖는다. 9화 「푸른 눈의 악마」나 12화 「유이의 마음」은 공략의 진도와 무관하게 그 안에서 문제가 나오고 답이 나온다. 장편의 큰 줄기를 매주 조금씩 미는 대신, 큰 줄기를 배경으로 깔고 매주 다른 사건을 얹는 방식이다. 데스 게임이라는 소재가 2010년대 내내 반복해서 쓰인 이유도 여기에 가깝다. 규칙 하나만 세워 두면 그 위에 무엇이든 올릴 수 있다.

키리토

앞의 14화에서 이 인물은 규칙을 이용해 문제를 푼다. 뒤에서는 그럴 규칙이 없다

뒤의 11화는 규칙이 사라진 구간이다

15화 부제가 「귀환」이다. 여기서 무대가 바뀐다. 16화 「요정들의 나라」, 18화 「세계수로」, 19화 「루그루 회랑」, 22화 「그랜드 퀘스트」. 부제가 사건 이름에서 장소 이름으로 바뀐 것이 이 구간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 준다. 앞의 회차 제목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가리켰고, 뒤의 회차 제목은 어디로 가는지를 가리킨다.

문제는 목표가 바뀐 것이 아니고 규칙이 없어진 것이다. 새 무대에서는 죽음이 현실의 죽음이 아니다. 아인크라드에서 매 회차를 지탱하던 조건이 통째로 사라졌는데 이를 대신할 새 조건은 세워지지 않는다. 남는 것은 도달해야 할 장소와 구해야 할 사람뿐이고, 그래서 뒤의 11화는 사건의 연속이 아닌 경유지의 목록이 된다. 인물의 위치도 함께 바뀐다. 앞에서 공략조 길드의 부단장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던 아스나는 뒤에서 목적지에 놓인 사람이 된다. 행동하던 인물이 목적어가 되면 그를 맡은 배우가 할 일도 함께 줄어든다. 토마츠 하루카는 엔딩 「유메세카이」를 부른 사람이기도 한데, 뒤의 11화에서 그의 몫은 앞의 14화보다 확실히 좁다.

두 구간의 격차는 작화나 예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앞의 14화는 자기가 세운 규칙 안에서 문제를 냈고, 뒤의 11화는 규칙 없이 목적지만 남겼다. 25화를 한 작품으로 묶어 세면 이 격차가 평균에 묻힌다.

25화를 통틀어 온도가 일정한 것은 음악 하나다. 카지우라 유키의 스코어는 무대가 바뀌어도 편성을 바꾸지 않고, LiSA의 「crossing field」는 스물다섯 주 동안 매 회차 같은 위치에서 흐른다. 두 구간의 이음매가 그나마 덜 드러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규칙이 없는 세계에서는 무엇을 이겨도 이겼다는 느낌이 남지 않는다.


이 작품에 붙는 평가는 무엇이든 25화를 하나로 묶어 낸 값이다. 그런데 앞과 뒤는 무대도 규칙도 목표도 공유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둘을 한 작품으로 세는 것은 이야기의 사정인가, 편성표의 사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