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이 사람을 울린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내가 적으려는 것은 어떤 순서로 울리는가다. 22화를 보면 그 순서가 거의 바뀌지 않는다.

공정
2014년 4분기 방영, A-1 Pictures 제작, 감독 이시구로 쿄헤이, 시리즈 구성 요시오카 타카오, 음악 요코야마 마사루, 전 22화. 연주 회차에서 감정은 아래 네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 색을 먼저 뺀다. 1화 부제가 「모노톤 / 컬러풀」이다. 무채색과 채색을 갈라 쓰겠다는 규칙을 첫 회 제목에 적어 두고 시작한다
- 소리를 진짜로 바꾼다. 삽입 연주에 실제 연주자의 녹음을 썼다. 화면이 그림인 채로 소리만 실물이 되는 순간이 이 작품의 무기다
- 그 위에 말을 얹는다.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인물의 속말이 함께 깔린다
- 회상을 끼운다. 현재의 연주와 과거의 장면이 번갈아 붙는다
여기서 둘째와 셋째가 서로를 방해한다. 클래식 실황은 그 자체로 정보량이 큰 소리다. 연주자가 어디서 밀고 어디서 당기는지가 다 들리고, 듣는 사람은 그것을 따라가느라 바쁘다. 그 위에 문장을 얹으면 관객은 소리 대신 문장을 듣는다. 실물 녹음을 어렵게 확보해 놓고 그것을 말로 덮는 셈이다. 해석할 몫이 사라지면 감동은 관객이 만들어 내는 것이 되지 못하고 작품이 배달해 주는 것이 된다.
첫째와 넷째는 그 반대편에서 일한다. 회상 컷은 한 장면에 시간을 두 겹으로 깔고, 채도 규칙이 그 두 겹을 구분해 준다. 지금이 언제인지 관객이 헷갈릴 일이 없다. 친절한 설계이고, 22화짜리 편성에서는 필요한 친절이기도 하다. 다만 친절도 반복되면 예고가 된다. 화면의 색이 빠지는 순간 다음에 무엇이 올지 관객이 먼저 안다. 감정이 도착하기 전에 관객이 그 감정을 미리 준비하고 기다린다.

연주 중에도 이 인물의 속말이 계속 들린다. 셋째 단계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왜 이 공정인가
연출가의 습관으로 보기는 어렵다. 원작은 아라카와 나오시가 월간 소년 매거진에 연재한 만화이고, 2013년 고단샤 만화상 소년부문을 받았다. 월간지는 독자를 한 달 뒤에 다시 붙잡아야 한다. 한 회분마다 확실한 정점이 하나씩 서 있어야 하고, 그 정점은 애매하면 안 된다. 월간 연재분의 리듬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 리듬을 22화짜리 주간 방영으로 옮기면 정점이 매주 온다. 시리즈 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주기를 다시 배분하는 것이었는데, 이 작품은 보존을 골랐다. 원작에 대한 예의로는 옳고, 애니메이션의 호흡으로는 손해다. 같은 장치가 22번 반복되면 스물두 번째에는 장치가 먼저 보인다. 내가 후반부에서 덜 흔들린 이유는 이야기가 약해져서라기보다 순서를 외웠기 때문이다.
같은 흔적이 개그 파트에도 남아 있다. 소년 만화 연재분의 과장된 몸개그가 데포르메 작화 그대로 옮겨져 있어, 연주 회차에서 쌓아 올린 긴장이 다음 컷에서 한 번에 풀리는 구간이 22화에 걸쳐 반복된다. 이것도 각색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결과다. 매체를 옮기면서 무엇을 덜어낼지 정하는 일이 각색인데, 이 작품은 그 결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음악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8화 부제가 「울려 퍼져라」, 9화가 「공명」이다. 13화 부제 「사랑의 슬픔」은 크라이슬러의 소품과 같은 제목이다. 회차 이름을 소리에서 가져오는 편성은 음악이 배경이 아니라 사건이라는 선언이다. 오프닝 「빛난다면」과 엔딩 「반짝임」이 연주곡이 아닌 노래인 것도 계산으로 읽힌다. 클래식은 극 안에 두고, 극 바깥은 다른 소리로 닫는다.
정리하면 이 작품은 재료를 최고급으로 들여왔고 그것을 스스로 가렸다. 연주 장면만 떼어 놓으면 뺄 것이 없다. 그 위에 얹힌 말과 회상까지 함께 세면 아쉬움이 남는다. 기술이 모자란 작품은 아니지만, 관객이 스스로 해석할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다.
이 작품은 사람을 울리는 데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다. 같은 순서를 22화 내내 지켰기 때문인데, 그래서 뒤로 갈수록 덜 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