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나는 완성된 124분보다 그 124분이 만들어진 순서에 관심이 간다. 아래는 연표다. 각 항목에 그해에 결정된 것과 그 결정이 화면에 남긴 자국을 함께 적었다.

AKIRA

1982년 원작 연재가 시작된다

오토모 가쓰히로가 주간 영 매거진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개봉한 1988년에도 이 연재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이 영화는 완결된 원작을 요약한 물건이 아니라, 진행 중인 원작에서 감독 본인이 다른 결말을 만들어 붙인 물건이다. 각색자가 원작자와 같은 사람이라 가능한 일이었고, 그래서 이 영화에는 원작을 줄일 때 흔히 생기는 눈치 보기가 없다.

1987년 대사를 먼저 녹음한다

이 작품이 기술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프리스코어링 때문이다. 보통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림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 목소리를 얹는다. 이 영화는 순서를 뒤집어 대사를 먼저 녹음하고 그 소리에 맞춰 입을 그렸다. 그 결과가 입 모양에 남았다. 인물이 말할 때 입술의 움직임이 발음과 어긋나지 않는다. 카네다 쇼타로 역의 이와타 미츠오와 시마 테츠오 역의 사사키 노조무가 주고받는 장면에서 특히 그렇다. 두 사람이 말을 끊고 겹치는 구간이 많은데도 입이 따라간다.

카네다 쇼타로

붉은 바이크의 정지 장면. 이 한 컷의 반사광 처리가 이 영화의 공정을 요약한다

1988년 개봉, 그리고 색

7월 16일 개봉, 러닝타임 124분, 제작은 도쿄 무비 신샤. 작화감독은 나카무라 타카시이고 각본은 오토모와 하시모토 이즈오가 함께 썼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것은 야간 장면의 색이다. 네온과 폭발광이 인물의 얼굴에 얹히는 방식이 당시 기준으로 이례적으로 촘촘하다. 셀 애니메이션에서 빛을 표현하려면 색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색이 늘면 칠하는 손이 그만큼 더 필요하다. 이 영화의 화면이 비싸 보이는 이유는 기법보다 인건비에 있다.

음악은 게이노 야마시로구미가 맡았다. 오케스트라도 신시사이저도 아닌 타악과 인성 합창이 중심이라, 도시를 그린 SF 영화의 배경음으로는 낯선 선택이다. 이 낯섦 때문에 네오 도쿄가 미래 도시보다 축제와 폐허가 겹친 장소처럼 들린다.

시마 테츠오

이 인물이 변해 가는 과정은 대사보다 작화의 물량으로 설명된다

1990년 원작이 끝난다

만화는 영화가 나온 뒤에야 완결됐고 단행본으로 여섯 권이다. 영화의 124분에 그 여섯 권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중반 이후 원작에 있던 여러 세력과 사건이 영화에서는 통째로 빠지거나 한두 컷으로 줄어든다. 이 영화는 원작을 요약하지 않았다. 원작의 첫 몇 권을 뼈대로 삼아 다시 지은 다른 건물이다. 두 판본의 결말이 다르다는 점만 알고 보면 각색을 실패로 읽는 일은 없다.

또 하나 적어 둘 것은 이 영화의 배경이 2019년의 네오 도쿄라는 설정이라는 점이다. 1988년에 만들어진 작품이 31년 뒤를 그렸고, 지금은 그 연도마저 지나갔다. 미래를 그린 화면이 과거가 된 뒤에도 낡아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가 기술의 모양보다 도시의 밀도를 그렸기 때문이다. 간판과 전선과 인파의 양이 화면을 채우고, 그런 것들은 연도와 함께 낡지 않는다.

정리하면

  • 미술과 색. 야간 장면의 광원 처리가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부분이다
  • 공정. 프리스코어링이 연기와 작화를 같은 순서 안에 놓았다
  • 음악. 타악과 합창이라는 선택이 도시의 성격을 바꿨다
  • 각색. 연재 중인 원작에서 다른 결말을 만든 결단

아쉬운 것은 인물이다. 카네다와 테츠오 바깥의 인물들은 각자 한 가지 기능만 맡고 화면에서 물러난다. 124분에 이만한 물량을 넣으려면 어딘가는 얇아져야 했고, 인물 묘사가 그만큼 줄었다.


마지막으로 제작 조건을 적어 둔다. 오토모 가쓰히로는 연재 중인 자기 만화를 자기가 각색했고, 대사를 먼저 녹음할 시간을 받았고, 색을 늘릴 예산을 받았다. 이 셋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주어진 상황이 다시 오기는 어렵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의 절반은 화면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그 조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