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묘에 가장 자주 붙는 말은 가장 슬픈 애니메이션, 혹은 한 번 보면 다시 못 보는 영화다. 두 말 다 이 88분을 혼자 놓고 하는 평가다. 그런데 1988년 4월 16일에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이것만 본 것이 아니다.

「이웃집 토토로」와 한 표로 묶여 있었다
두 작품은 같은 날 2편 동시상영으로 걸렸다. 이쪽이 88분, 토토로가 86분이다. 합치면 두 시간 반이 넘는다. 한 번 표를 사면 전쟁 드라마와 여름 판타지를 연달아 보게 되는 편성이었다.
이 조건을 알고 나면 앞의 평가가 조금 달리 들린다. 이 영화의 무게를 말할 때 사람들은 대개 이 영화만 켜고 끄는 상황을 전제한다. 그 전제는 1988년 관객의 것이 아니었다. 두 편을 이어 본 사람에게 이 88분은 다른 86분과 붙어 있었다.
토토로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동시상영은 한쪽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토토로를 보러 온 관객이 이쪽을 함께 봤고, 이쪽을 보러 온 관객이 토토로를 함께 봤다. 어느 쪽을 목표로 표를 샀든 두 편을 다 보게 되는 편성이다. 두 작품의 관객 수가 갈릴 수 없는 구조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겠다. 나는 이 편성이 좋았다고도 나빴다고도 적지 않겠다. 어느 쪽이 어느 쪽을 도왔는지는 그때 극장에 있던 사람만 말할 수 있고,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다만 두 편이 하나의 상품이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확인이 된다. 그리고 오늘 이 작품을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글이 그 사실을 빼놓고 쓴다.
원작이 놓여 있던 조건도 적어 둔다
이 영화는 오리지널이 아니다. 노사카 아키유키의 소설이 원작이고 그 소설은 1968년 나오키상을 받았다. 나오키상은 대중문학에 주는 상이고, 수상 시점이 애니메이션보다 스무 해 앞선다. 1988년 관객 중 상당수에게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작가가 전시에 어린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잃었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고, 그 경험이 원작의 바탕이다. 이 조건은 감독이 만든 것이 아니라 원작에서 온 것이다. 각색이 무엇을 더했는지를 따지려면 이 출발점을 먼저 세워 놓아야 한다.
그 편성이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은 지브리 작품이면서 배급 판권 사정으로 한동안 다른 계열에서 유통됐다. 지브리 묶음 상품이나 스트리밍 목록에서 이 한 편만 빠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 만들 때는 토토로와 한 표였는데, 팔릴 때는 지브리 목록에서 혼자 떨어져 나온 셈이다.
한국 사정도 같다. 일본 개봉으로부터 26년이 지난 2014년 6월 19일에야 디지털 리마스터판으로 정식 개봉했다. 그 26년 동안 이 작품을 본 한국 관객은 정식 경로가 아닌 곳에서 봤다는 뜻이다.

무엇과 함께 걸렸는지, 어디서 팔렸는지가 한 편의 값에 들어간다
지금 보는 사람에게는 조건 하나가 빠져 있다
앞에서 적은 대로 이 작품은 원래 다른 한 편과 붙어 있었다. 지금은 이것만 켤 수 있고, 그러면 88분이 통째로 한 방향으로만 간다. 만들 때 계산했던 조건이 사라진 상태로 보는 것이다. 작품 탓은 아니지만 지금 켜는 사람이 받는 것은 그만큼 다르다.
남은 사실도 적어 둔다. 원작은 노사카 아키유키의 소설이고 1968년 나오키상을 받았다. 작가는 실제로 전시에 어린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잃었고 그 경험이 원작의 바탕이다. 감독은 다카하타 이사오, 제작은 스튜디오 지브리다. 작중에 나오는 사쿠마식 드롭스는 실존 제품이고 영화 뒤에 복각 캔이 나온 적도 있다.
답하지 못한 질문을 하나 남긴다. 지금 어느 배급사가 이 두 편을 다시 한 표로 묶어 팔 수 있을까. 나는 못 한다고 본다. 그러면 1988년의 그 편성은 무엇이었을까. 자신감이었는지, 계산이었는지, 아니면 그때는 그런 것을 묻지 않던 시절이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