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장편이 한국 극장에 걸리는 날짜는 그 작품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와 거의 상관이 없다. 한국에 그 작품을 들여올 경로가 언제 생겼는지가 정한다. 그래서 속편이 원작보다 스무 해 먼저 걸리는 일도 생긴다.

서른일곱 해 걸린 작품과 스물아홉 해 걸린 작품이 같은 날 걸렸다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는 일본에서 1987년 3월 14일에 개봉했다. 「공각기동대」는 1995년 11월 18일이다. 두 편 사이에 여덟 해 반이 있다.
그런데 한국 개봉일은 둘 다 2024년 12월 11일로 같다. 일본 개봉으로부터 각각 서른일곱 해 아홉 달, 스물아홉 해 한 달이 지난 뒤다. 일본에서 여덟 해 반 떨어져 있던 두 편이 한국에서는 같은 날 같은 극장에 걸렸다. 만들어진 순서가 개봉 순서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 경우다.

1987년작과 1995년작이 2024년 12월 11일 같은 날 한국에 들어왔다
속편이 먼저 들어왔다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의 속편이다. 일본 개봉은 2004년 3월 6일이고 한국 개봉은 같은 해 10월 8일이다. 일곱 달 만에 들어왔다.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한국 관객은 2004년에 속편을 먼저 보고, 그 앞 이야기를 2024년에 봤다. 두 편의 한국 개봉 사이에 스무 해가 있고 순서는 뒤집혀 있다. 일본에서는 원작과 속편 사이가 여덟 해 반이었고 순서도 그대로였다.
2025년 10월 29일에 「이노센스」가 한국에서 다시 걸렸다. 원작이 들어온 다음 해다. 이제서야 두 편을 만들어진 순서대로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한 해 안에 들어오던 시기가 있었다
2000년대 중반의 일본 애니메이션 장편은 한국에 빨리 들어왔다. 「이노센스」가 일곱 달, 「스팀보이」가 일본 2004년 7월 17일에서 한국 2005년 8월 4일로 한 해, 「파프리카」가 일본 2006년 11월 25일에서 한국 2007년 11월 3일로 한 해가 채 안 된다. 「천년여우」는 일본 2002년 9월 14일에서 한국 2004년 7월 9일로 한 해 열 달이다.
최근작도 비슷하다. 「블루 자이언트」는 일본 2023년 2월 17일 개봉에 한국 2023년 10월 18일 개봉으로 여덟 달 차이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은 대체로 한 해 안에 들어온다.
순서가 지켜진 경우도 있다
곤 사토시의 장편 세 편은 한국에서도 만들어진 순서대로 걸렸다. 「퍼펙트 블루」가 일본 1998년 2월 28일 개봉에 한국 2004년 5월 26일, 「천년여우」가 한국 2004년 7월 9일, 「파프리카」가 한국 2007년 11월 3일이다. 첫 장편이 두 번째보다 여섯 주 먼저 들어왔다. 일본에서 첫 장편과 두 번째 사이가 네 해 반이었던 것이 한국에서는 여섯 주로 줄었지만 앞뒤는 바뀌지 않았다.
오시이 마모루 쪽과 갈린 이유는 단순하다. 곤 사토시의 세 편은 한국에 배급 경로가 생긴 뒤 짧은 기간 안에 한꺼번에 들어왔고, 그때 오래된 것부터 걸었다. 한꺼번에 들여올 때 순서를 지키면 뒤집히지 않는다. 「퍼펙트 블루」는 2025년 9월 11일에 다시 걸리기도 했다.
그런데 옛 작품은 수십 해가 걸린다
「반딧불이의 묘」는 일본 1988년 4월 16일 개봉인데 한국은 2014년 6월 19일이다. 스물여섯 해다. 「인랑」은 일본 2000년 6월 3일에서 한국 2019년 9월 4일로 열아홉 해가 걸렸다.
이 작품들이 만들어졌을 때 한국에 개봉할 길이 없었고, 뒤늦게 길이 생기자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래서 한국 개봉일을 늘어놓으면 2004년 언저리와 2010년대 중반 이후에 덩어리가 생긴다. 일본 개봉일에는 그런 덩어리가 없다.
이것이 한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따라온 사람의 경험을 뒤틀어 놓는다. 어떤 감독의 첫 장편을 마지막에 보고, 어떤 시리즈의 결말을 시작보다 먼저 보게 된다. 본 순서가 만들어진 순서와 다르면 그 작품이 무엇을 이어받았고 무엇을 처음 한 것인지 알기 어려워진다.
1987년작과 1995년작을 같은 날 극장에서 고를 수 있었던 2024년 12월 11일은 그 점에서 드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