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이 작품을 권했다가 되돌아온 말들을 모았다. 네 가지였다. 하나씩 답해 본다.

"장기를 몰라서 못 보겠다"
이 작품은 대국의 수를 설명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설명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판 위에서 무엇이 유리한지를 알려 주는 대신, 대국이 끝난 뒤 방으로 돌아온 인물이 무엇을 하는지를 보여 준다. 승부보다 승부 뒤의 시간이 본체다. 장기를 몰라도 볼 수 있고, 장기를 알아도 그 지식이 별로 쓰이지 않는다.
"샤프트 화면이 산만하다"
감독은 신보 아키유키이고 제작은 샤프트다. 화면 분할, 갑작스러운 색면, 문자 삽입 같은 특징이 그대로 있다. 다만 여기서 그 기법은 장식이 아니라 시점 표시로 쓰인다. 주인공 키리야마 레이가 자기 안으로 들어갈 때 배경이 물이나 색면으로 바뀌고, 카와모토 자매의 집에 있을 때는 그 처리가 거의 사라진다. 기법이 나오는 빈도 자체가 인물의 상태를 알려 준다. 산만하다고 느꼈다면 그 구간이 실제로 인물이 산만한 구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인물이 혼자 있는 장면에서만 배경이 물로 바뀐다. 규칙이 정해져 있다
"어두워서 힘들다"
어둡다는 말은 맞다. 다만 이 작품은 어두운 구간을 오래 두지 않는다. 전 22화를 보면 무거운 회차 뒤에 반드시 카와모토 세 자매의 집 장면이 붙는다. 카야노 아이, 하나자와 카나, 쿠노 미사키가 맡은 세 인물은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레이를 밥상 앞에 앉힌다. 원작자 우미노 치카가 『허니와 클로버』에서 쓰던 배치와 같다. 고통을 다루되 그 고통만 붙들고 있지는 않는다.
주제가 배치도 같은 판단 위에 있다. 오프닝은 1~11화에서 BUMP OF CHICKEN의 「アンサー」였다가 12화부터 YUKI의 「さよならバイスタンダー」로 바뀐다. 엔딩도 요네즈 켄시의 「orion」이 12화부터 들어온다. 절반 지점에서 네 곡 중 세 곡이 한꺼번에 갈린다. 22화를 두 부분으로 나눠 놓았다는 뜻이고, 음악은 그 경계를 관객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는다.
"22화는 너무 길다"
길기는 하다. 그리고 그 길이가 이 작품이 쓰는 방법이다. 한 인물이 조금 나아졌다가 다시 물러나는 왕복을 여러 번 보여 주려면 회차가 필요하다. 두세 화 만에 나아지는 인물은 이 이야기가 다루려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음악을 맡은 하시모토 유카리가 피아노 한 대로 같은 선율을 상황만 바꿔 반복하는 것도 이 왕복을 소리로 옮긴 것이다.
아쉬운 곳은 후반부다. 1기는 22화를 채우고도 이야기를 닫지 않고 다음 기수로 넘긴다. 한 기수만 놓고 보면 여기가 한계다.
덧붙임: 원작과의 거리
원작은 우미노 치카가 영 애니멀에 연재 중인 만화이고, 1기 22화는 그 앞부분을 다룬다. 만화의 칸은 여백이 많고 인물의 독백이 그 여백에 얹히는 구조인데, 애니메이션은 그 여백을 배경 처리로 옮겼다. 샤프트의 화면 분할이 여기서 기능하는 것은 그래서다. 만화의 빈 칸을 화면의 빈 면으로 바꾼 것이고, 시리즈 구성 토 후야시와 캐릭터 디자인 스기야마 노부히로가 그 변환을 22화 내내 같은 규칙으로 유지한다.
장기 장면의 처리도 원작을 따른다. 만화는 대국을 수순으로 보여 주지 않고 기사들의 얼굴과 손으로 보여 주는데, 애니메이션도 판을 위에서 잡는 컷을 아낀다. 장기를 아는 사람에게는 아쉬울 수 있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진입 장벽이 사라지는 선택이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다만 대국의 긴장을 소리로는 놓치지 않는다. 초읽기를 세는 목소리와 말을 놓는 소리가 판을 비추지 않는 동안에도 계속 들리고, 그 두 소리만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가 전달된다.
스포일러 없이 한 장면만 적는다. 레이가 카와모토 집에서 밥을 먹다가 자기가 몇 시간 만에 앉아 있는지를 문득 깨닫는 짧은 컷이 있다. 대사도 음악도 없다. 이 작품이 무엇을 하려는지가 그 몇 초에 다 들어 있다.